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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대근무의 시작.
    취업, 직장/나의 이야기 2021. 1. 5. 19:01

    직업적 불면증, 과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 까?

     

    입사와 동시에 시작된 5개월간의 교육을 끝마치고 비로소 한 달 전부터 교대근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33교대로 시작된 설비 직무는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았다. DAY, SWING, GY로 이루어진 33교대 근무, 한 달 6일 휴일의 정석과도 같은 교대 근무는 우선 신체리듬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처음 DAY, GY 근무에 들어갈 때만 해도 나름대로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GY가 끝나고 SW근무를 들어가면서부터 생각이, 아니 몸이 바뀌었다. 평소 시험이나 프로젝트를 대비하며 밤새기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밤 근무 간 크게 피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GY를 한 주간 들어가다 보니 그것에 신체리듬이 맞추어져 다음 근무부터 밤에 잠이 오질 않았고 결국 어두운 방에서 오지 않는 잠과 사투를 벌이다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부터 잠들어 알람이 울리면 바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SW 근무를 하는 주의 마지막 날에는 40시간이 넘게 깨어있었는데 퇴근 후 정작 두 시간 밖에 잘 수 없었다. 얼마간 깨어 있다가 3시간씩 자고 깨기를 반복하며 허무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다.

     

     

    퇴근 후에는 그저 밀린 잠을 자기 바쁜 것 같다. 그렇게 낮 밤이 정신없이 바뀌면 다시 출근시간이 다가온다. 신체 리듬이 깨져버리니 머릿속이 멍한 상태로 출근해 선배들에게 현업 지식을 전수받는데, 멀쩡한 상태로 들어도 잘 기억날까 말까 한 내용들이 말 그대로 한 귀로 들어와 한 귀로 흘러가 버리게 된다. 사실 이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건강을 더 챙기게 되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찬장에는 각종 알약들이 놓이게 된다.

     

     

    와중에 맨몸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다. 평소 면역력이 강하지 않은 편이라 운동은 웬만큼 피곤하지 않는 한 최소 격일에 한번 씩 하려고 한다. 멜라토닌 복용으로 수면유도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점차 시도해 봐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잠이 격렬히 올 때는 그 동안 버티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고 일어나 무언가를 하자는 생각으로 그냥 자버리는 습관이 있다. 이로 인해 수면 패턴이 더 꼬이게 되어 어느 순간 정작 피곤하면서도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듯하다.

     

     

    입사 전, 혹은 입사 후 초기 때만 해도 그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과, 이 정도 고생은 할 수 있다, 시켜만 주면 뭐든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신이 해롱거리고 이명이 들리고, 자느라 밥을 먹지 못해 끼니를 걸렀을 때의 몸 상태와 그런 상황들을 모두 감안하고서 직장에서는 밝은 신입의 모습으로 무엇이든 끊임없이 배워나가야 하는. 그런 미래는 미래의 나에게 맡겨두고서.

     

     

    하여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은 아래와 같이 크게 두 가지이다.

     

    1. 업무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2. 30대 초반까지 경제적 자유를 누리려면 무엇을 준비해야할까에 대한 물음.

     

     

    먼저 1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앞서 언급하였듯 이는 건강문제가 포함되어있기도 하고 다른 문제들도 포함되어 있다. 다른 문제라 함은 한명의 설비 엔지니어가 탄생하는 과정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 체계화(자료화) 해놓기는 했겠지만 그것을 현업에서 읽어가며 체화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미 기존에 업무를 충실히 진행하던 사람이 작성한 자료이기 때문에 신입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어렵기 때문이다. 거기에 설비를 다루는 일은 메이커 사에서 지급한 매뉴얼이 있기는 한데, 그 양이 방대하고 영어로 되어있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선배들에게 1:1로 배우는 방법이다. 따라서 한명의 제대로 된 설비 엔지니어가 탄생하려면 상당한 세월이 걸리는 것이다. (업무 system을 이해하고 수명업무를 통달하는 데는 1~2, 설비에 대해 이해하고 나아가 문제를 발굴해 고치기 시작하는 데는 적어도 5~10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일은 어디까지나 반도체 설비직무 내에서만 통용되는 일이다. 즉 사회로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값비싼 설비를 다루는 만큼 퇴직 후 같은 설비를 다룰 일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노후에 대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교대 근무라는 쉽지 않은 근무 여건을 떠나서라도 영원히 있을 수 없는 이곳을 떠났을 때 내가 무엇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다른 직종의 사람들에 비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2번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30대 초반에 경제적 자유를 누리려면 그간 직장에서의 수익을 현명하게 투자하여 몸집을 불려나가야 하는데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그렇다. 당연하게도 합격을 한 것이 다가 아니었다. 물론 올해 있었던 가장 큰 인생의 변곡점이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대학생활 내내 쉼 없이 이어진 공부와 실습과정 등 흔한 해외여행 한 번 다녀오지 않고 스펙을 쌓아오며 지쳐있었기에 입사 후부터 쉬면서 복잡한 생각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했다. 그 시간마저도 알차게 사용했어야 했던 까닭일까. 연초부터- 바뀔 것들에 대한 두려움보다 바뀌지 않을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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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1에 추가

     

    반도체 설비직 -> 반도체 공정직 -> 현재는 연구소 기술원으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돌이켜 보자면 반도체 설비직에서 했던 일은 정밀 설비가 어떤 요소로 이루어져있는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어떤 설비건 반도체 설비에서 몇 가지 요소를 덜어내거나 더하면 다른 설비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계 장치는 결국 압력(공압, 유압)이나 모터로 구동하고 구동 동작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읽어내기 위해 다양한 센서를 사용하게된다. 반도체 설비에는 온갖 센서와 벨브가 붙어있고, 측정된 값이나 센서로부터의 신호가 약간만 이상해도 interlock이 발생하도록 되어있어 여러가지 문제를 대응하게 된다. 즉 센서 오감지나 솔레노이드 벨브의 수명 등 부품에 대한 이해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 자체가 후에 어떤 설비를 마주해도 이 설비도 결국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는 사실을 실험 설비를 다루면서 배우게 되었다.

     

    끝에서 두번째 문단은, 돌이켜보자면 설비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기에 벌어진 오해이다. 어떻게 작동시키는가? 그리고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는가? 이 두 가지 물음으로 설계되고 유지보수 되는 것이 설비이기 때문에 사실상 설비직은 어떤 설비를 다루건 업무간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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