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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버드대 행복학 강의, 해피어(Happier)- 탈 벤- 샤하르
    리뷰/책 리뷰 2020. 8. 6. 20:48

    <하버드대 행복학 강의, 해피어(Happier)를 읽고>





    중고책 서점에서 심리 코너에서 한동안을 서성이다, 최근 물질적인 이익과 일에 대한 소명의식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기에 몇 구절 읽고서 바로 구매했다. 행복에 대한 고민이 다시 한 번 필요로 한 시간이라 여겼기에. 혹자는 고민을 할 시간에 여행을 떠나라 말한다. 행동을 해서 실패든 성공이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덜 허무한 삶이라 다수에 의해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래와 현재에 손실이냐, 이익이냐에 따라 4분면이 나오게 되는데 미래에도 현재에도 이익인 이상적인 상태가 가능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행복이라 설명한다. 1. 그러한 상태가 가능함을 일깨워주고, 2.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책에서 나오는 3가지 우리가 멀리해야할 주의는 허무주의(현재에도 미래에도 손실), 성취주의(현재는 손실이지만 미래는 이익), 쾌락주의(현재는 이익이지만 미래는 손실)이다. 허무주의는 멀리해야한다고 쳐도 성취주의의 경우 미래의 이익을 바라보면서 버틸 때 나는 진정으로 행복하다.’라는 말을 할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성취주의란 미래에만 골몰해 현재의 행복은 완전히 뒷전으로 두는 주의이다. 즉 내게 12000원이 주어져 식사를 두 끼 할 수 있다면 점심은 1000원짜리 삼각 김밥을 먹고, 저녁에는 11000원짜리 보쌈 정식을 먹는 것이다.(나는 삼각 김밥도 맛있게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 있는 성취주의일지도 모른다. 보쌈 정식을 상상하며 최대한 삼각 김밥을 즐기는 자세. 점심과 저녁의 차이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간의 의미 있는 성취주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일까.)

     

     

    저자는 행복의 길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내 삶의 구성요소들에 궁극적인 가치(소명), 의미, 즐거움이라는 특성을 부여하기로 마음먹고 평생 동안 점점 더 행복해져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에는 반대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법과 전반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내게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나는 어느 정도는 허무주의자이며 성취주의자이고 동시에 쾌락주의자이다. 그 어느 것도 삶의 한 부분으로써 내게 오작용 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어떤 사람에게서 어떤 상태가 나타나든 그것이 드러난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며 극단적인 성향은 어느 순간 제자리로 돌아가리라는 상식에 근거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저 사람은 허무주의자야. ! -> 이런 결단이야말로 허무하기 이를 데 없다.)

     

     

    책 전반의 내용은 결국 빛살 좋은 성취주의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궁극적인 가치를 목표에 덧대어 그것에 소명의식을 지닌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어!) 현실적으로 높은 보상을 주는 일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될 확률이 높고 따라서 높은 보수를 생각한다면 시간과 희생이 필요로 하며 육체적, 정신적 고됨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저자는 부유함이나 경제적 자유를 좇으려면 의미 있게하라고 한다.(ex)왜 내가 경제적인 자유를 얻어야 하는가? 에 대한 7가지 답변을 적으며 그 의미를 찾아가라는 조언을 한다.) 하지만 의미가 있든 없든 육체와 정신이 부서지고 닳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보상이라도 많이 주면 좋으련만. 보상도 적으면서 일이 고된 경우는 또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추구하는 것은 의식주의 해결과 더불어 현실적으로 많은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준다. 그러나 궁극적인 의미까지 따져가면서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독사가 가득한 방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연간 1억을 받을 수 있다고 할 때 생명을 담보로 한 채 그 일을 맡겠다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동시에 독사가 가득한 방에서 머물며 높은 보수를 받아 어려운 자들을 구해야지라는 소명의식을 가지기에는 개인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네 서민들은 사상가 보다는 이윤을 보고 움직이는 작은 영세기업 CEO에 가깝기 때문이다.

     


    본문 내용에 따라 아내가 남편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을 행복이라 말할 수도 있고(진정한 사랑의 실현) 희생에 의한 불행으로 말할 수도 있다. 사고방식의 차이로 이는 불교적인 색이 상당히 짙다.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면 그 상황을 즐기면 된다. 즐기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그대로 괴로워하며 살거나 그 상황을 극복하거나 아니면 피해라. 피할 수도, 극복할 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가만히 있는 선택을 해라. 대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볼멘소리하지 말 것. 그것은 네 선택이니까.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아니다. 필자가 책을 읽고 나서 스스로에게 반문했던 것은 궁극적인 의미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되 그것이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지 않은가이다. 삶에는 정말 어떻게 해도 소명의식을 가지기 힘든 일과 사건을 헤쳐 나가야 할 때가 있다. 뜻과 소명이 없는 일을 하더라도 틀림없이 어느 순간 인생에 유의미하게 작용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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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고, 얼마전까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독사가 가득한 방' 비유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잘 없다. 즉 소명의식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여기에는 직장 앞에서 잡았던 모범 택시 기사님이 우리 회사 직원을 태우고 다니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씀하셨던 것과 출퇴근을 반복하다보니 점점 나도 모르게 내 일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직장에서의 시간에 더 집중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이상 신입사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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